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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인터뷰

[인터뷰] 겨울 거리에서 더 당당한 포스의 시인, 문효치

 

제법 매운 추위를 보이는 12월 둘째날이다. 문파문학 문효치 시인 인터뷰는 두 번째로 남다른 인연을 느낀다. 한국여성문학인 행사를 축하하러 오신 시인은 여전히 다부지고 군더더기 없는 진솔한 무습을 지니고 계셨다. 며칠 전 시인의 세계를 확보하기 위해 문학잡지를 뒤적이다 큰 발견을 했다. 계간문예 가을호에서 수십 페이지에 걸쳐 시인을 다루었다. 시인 문효치 인간론부터 시평까지, 사진은 무려 수십 컷이고 연보는 몇 페이지인가. 조용한 배려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문효치 시인

1943년 전북 옥구군 옥산면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바람 앞에서」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산색」
시집『煙氣 속에 서서』, 『武寧王의 나무새』, 『백제의 달은 강물에 내려 출렁거리고』, 『백제 가는 길』, 『바다의 문』, 『선유도를 바라보며』, 『남내리 엽서』
 저서 -『시가 있는 길』, 『문효치 시인의 기행시첩』
동국문학상, 시문학상, 평화문학상, 시예술상, 펜문학상, 『신년대』동인, 『진단시』 창립 동인
월간 『문학과 창작』 주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역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역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출강.




Q. 한국 여성문학인행사에서 멋진 모습으로 큰 박수를 받은 문효치 시인과 다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았다. 한국문단의 흐름을 짚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왜냐하면 문효치 시인은 이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을 지낸 이력이 있기 때문에 2014년 한국문단의 흐름을 짚고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문효치 시인: 문학인들은 아직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창작에 임하고 있다고 바라보고 계셨다. 저마다 개성적 체계를 개척해가면서 하나의 성과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러나 아쉬운 점은, 문학인구가 2만에 육박하는데 열심히 공부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문학은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살과 육신의 피를 쏟아부어서 가치 있는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노력해야 하고 공부가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게을리 하는 문인이 많음을 느낀다고 했다. 등단이 쉽다는 것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치열한 공부의 풍토가 요망되고 다음으로 순수성의 회복이라고 한다.
일부는 상업성에 물들어 독자를 의식하여 휘둘리면 안 된다는 염려이다. 작가의식으로 자기세계의 길을 가야 하며 이것은 영혼의 순수를 지키는 일이라 했다. 영혼의 상처를 받고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인도할 수 있는 문학을 창조하기 위해서 작가 자신이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문제는 지나친 세트의식 -나하고 가까운 사람을 치켜세우고 거리가 먼 사람은 관심조차 갖지 않고 백안시하려는 파벌 같은 학연, 지연, 동인. 출신잡지 등-은 우리 문학인이 개선해 나갈 때 희망을 걸 수 있다는 제언이다.




Q. 젊었을 적 연좌제에 묶여 학군단훈련을 받고도 장교임용이 되지 않아 하사로 입대해야 했고 군 제대할 때까지 감시받는 고초를 겪었지만 시인의 가슴은 늘 서정이 흐르고 있었다. 투쟁하고 부딪히며 드러내고야 마는 강한 자의식의 세계를 보이는 시인도 있는데 시인의 서정성은 본 태생인지 알고 싶었다.

문효치 시인: 시는 자연스럽게 노래되어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에 넓은 의미의 서정시는 모든 시가 지닌 기본적인 감성의 가닥이라고 짚어주셨다. 이미지시나 정형시, 전통서정, 주지주의 시 등으로 분리하자면 시의 서정성은 끈질긴 DNA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을 지니고 계셨다. 한국인의 유전인자는 현대시가 아무리 변화하고 진화한다 해도 서정성은 유지해야 시로서의 변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인간 정서의 심연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 직관적 목소리 그것이 시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젊은이들의 관념적 말놀이나 개념의 짜깁기 시는 재기는 있을 수 있지만 진정성을 잃고 있어 외면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Q. 음악이나 음식, 패션 등에서 한류바람은 역동적이기에 한국문학의 한류화 소망도 그러하다. 세계 진출을 점진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문효치 시인: 문학은 언어예술이기 때문에 번역문제에 늘 부딪힌다.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소통이며 한국문학이 세계로 뻗어나는 데 큰 장애는 번역 문제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때문에 번역작가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적 계획이 필요하며, 미국이나 중국, 일본 유럽 등에 유학을 보내 번역작가 양성을 위해 각국문화를 아우르고 체득할 수 있는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간에 이룰 수 없는 일이며 보다 장기간의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각국 언어의 이해와 한국어 이해능력의 소통에 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기능 언어와 학자들의 교양언어가 있는데 12살 이전에 습득하는 기능 언어는 모어라는 말씀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머니의 음식에 입맛이 길들어 어머니의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문학언어도 모어에서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번역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의 맛을 알아야 우리문학을 번역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국가적 차원에서 번역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외국의 유수한 문인들을 초빙하여 우리나라의 지리, 문화를 그들의 작품 속에 용해시켜서 표현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하며, 한국의 작가들을 해외에 파견하여 여러 문화를 섭렵할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가 이루어져야 진정한 문화교류라 할 수 있다는 견해를 짚어주셨다. 모든 선진국들은 기초예술분야에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하며, 기초 순수예술을 시장에 내놓고 경쟁하며 생존하라 요구하는 것도 무식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중세 유럽은 귀족의 지원에 의해 순수예술이 세계 여러 나라에 뿌리를 뻗어나갔다고 하신다.      


▲ 베를린 세계 펜 대회에 한국대표단장으로 참석하여 만난 외국 작가들과
   

Q. 시인을 대하면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을 생각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현실, 늘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을 통해서 받은 존재감의 막연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시인의 정체성 찾기도 그런 아버지 부재와 압박감에서 고뇌하다 시문학를 통해서 확인받은 것인지 물었다.

문효치 시인: 시를 쓰면서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깨달아가는 시간이 좋았다고 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환경의 억압과 심리적 부담 속에서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것이 시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시가 돈이 되지 않아도 나는 시를 쓰면서 고통도 기쁨도 같이 누리며 생존의 의미,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를 쓸 때는 당연히 창작의 고통은 수반되지만 즐거운 고통이었지만, 출간한 시집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집은 없다고 하신다. 늘 만족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집을 내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겸손이다.


Q. 무령왕릉에서의 깨달음 이후 백제 관련 시를 지금껏 써오고 있는데 한 가지 주제를 향한 작가의 탐구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질문했다. 

문효치 시인: 물론 시가 줄곧 백제를 다루어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깊이로 가든 다양성을 추구하든 문학적 성취는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시가 백제의 정신이나 역사 의식 이것들을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문학으로 구현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서와 의식, 철학을 백제라는 공간을 활용하고 있을 뿐이라 한다. 이미 멸망한 나라이고 매몰된 역사를 갖고 있고 축소 약화된 시간의 나라이기 때문에 여백이 많다는 것이다. 여백이 많을수록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놀 공간이 많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했다.


Q.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회장으로 수필의 날 행사를 4년간 맡아온 지연희 문파문학 발행인이 시인에게 길을 묻는다. 문단행사에 지역 문인들의 참여방법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문효치 시인: 물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일부 문인만의 행사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지역과 지역 간의 교류를 중앙에서 관리해주는 방법도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지역문인들의 중앙문단에 적극적인 활동 및 참여는 지역과 중앙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기에 선결해야 하는 과제라는 것이다. 사실 만 명이 넘는 회원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만, 다만 최대한의 포용력을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 인터뷰 중의 문효치 시인

Q. 인터넷 속 모든 글들의 무한 복제와 무한 변형이 가능한 사이버공간에서의 작가활동과 문학의 미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효치 시인: 과거 100년 동안 겪을 변화를 몇 년 동안 수용해야 하는 속도의 시대에서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언젠가는 어지간한 활동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질 것임을 내다보고 계셨다. 보통 사람들도 인터넷 사진작가, 여행가, 요리사, 저술가로 활동하는 시대에 전자책출판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할 일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는 것이다. 경찰도 발로 뛰는 일보다 사이버수사대가 더 많이 활약하듯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글들이 홍수를 이루는 사이버 공간에서 작가들의 차별화된 작품 활동은 더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아직 작가의 현재는 전자출판보다 종이책의 촉감과 시각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듯이 당분간 오프라인과 아날로그적 활동이 유지되리라 생각하고 계셨다.



에디터 권남희
1987년 『월간문학』수필 당선.
현재 (사)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덕성여대, MBC 아카데미 수필강의
저서: 수필집 『그대삶의 붉은 포도밭』 등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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